Jo Hyu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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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록(寫眞日錄)] 1.
2024년 10월 3일, 그리고 10월 4일, 비오는 도쿄

6월 전시를 마무리한 후에는 내선일체를 거치며 동경을 수도로 인식했던 이들이 남양을 어떻게 헤아렸는지를 읽으며 지냈습니다. 함께 3개월 반을 고스란히 준비한, 일본에 닻을 내리는 스터디 투어 중에는 줄곧 독선과 마모에 관해서 생각했습니다. 과거의 독선적인 이념으로부터 파생된 지식, 그 후의 책도 독선적인 글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점을 나란하게 알아가면서요. 이런 글과 지식은 과연 언제 마모되는 걸까요? 날 것의 생각은 시간과 번역과 오역을 통해서 마모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도 해묵었기에 남동아시아를 보는 시야에 아른거리기만 하는 대동아공영권의 근원을 찾아서, 그리고 1990년대 급증한 일본의 남동아시아 미술 전시 및 컬렉션에 대한 기록을 찾아 한자를 독해하고, 여러 방편으로 문장을 풀어내려고 애썼던 첫 번째 장소에 대한 얘기를 짧게나마 해보려고 합니다.

3일, 7시쯤 도착한 이레귤러 리듬 어사일럼에는 나리타 공항과 같은 ‘나리타’를 이름으로 사용한다고 웃으며 말씀하시는 케이스케상이 계셨고, 뒤이어 도착한 목판화가들로부터는 공동 출판으로 말미암은 인쇄물에 관한 의지를 느꼈습니다. 예술에는 실질적이지는 않더라도 생각을 촉발하는 매개물로서의 힘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책을 살 수 있어 기뻤습니다. 4일, 국립신미술관과 재팬 파운데이션에서는 남동의 신성한 조형을 백과사전의 형식으로 나열하고 엮은 전집, 지도로 기호화된 남·동 아시아인의 모국, 가까운 과거의 큐레이터들이 논했던 아시아  근현대미술의 특성을 읽었습니다. 왜곡되고 틀지어진 인식을 조금씩 깎아내는 과정에는 아무런 결론도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더불어 국립신미술관의 복사기가 구권을 먹고 동전을 와르르 토해내던 중,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의 얼굴들이 박힌 엔화 신권을 지하철역과 편의점에서 털어버리며 일본에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시대가 아직은, 자료실의 어딘가에서는 아직 계속되고 있음을 감각했습니다. 다시 답할 수 없는 질문만을 만들어냈다는 탈력감과 앞으로도 훌훌 털어낼 수 없을 것 같은 기록을 품에 안고, 그럼에도 원거리에서 메일로만 인사 나눈 분들의 눈을 보고 손을 잡을 수 있어서 기뻤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교정에 깎이지 않는 추억거리를 다시 한 번 적습니다. 인연과 고마움에 닻을 내리고, 기록에 타점합니다.        

10월 3일
📍Irregular Rhythm Asylum|Shinjuku, 1 Chome−30−12 ニューホワイトビル 302号室

10월 4일
📍국립신미술관 아트라이브러리 国立新美術館|Roppongi, 7 Chome−22−2  
📍Japan Foundation|1-6-4 Yotsuya, Shinjuku-ku, Tokyo 160-0004
📍도쿄화랑 Tokyo Gallery + BTAP|104-0061 Tokyo, Chuo City, Ginza, 8-chōme−10−5 第四秀和ビル 7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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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록(寫眞日錄)] 2.
2024년 10월 5일, 비오는 도쿄와 마에바시

5일 하루는 오역을 도피의 형태로만 상정하는 일에 자문하는 일정들로 촘촘했습니다. MOT에서는 1940년대 일본 내부에서 성전(聖戰)으로 드높여진 대동아전쟁의 기록화집을 살펴보았습니다. 군부의 이념과 리얼리즘이 대중을 매혹하기 위해 애썼던 결과물을 한 장씩 넘겨보면서, 바로 어제의 공동이 펴낸 간행물과 80여 년 전 기획된 도록이 향하고자 했던, 상이한 노선을 그려보았습니다. 그 사이에서 진자운동했던 사람들, 그 운동을 이후의 시점으로 옮겨내고자 했던 그들의 시각을 찾아가는 일이 저희에게는 시급했습니다. 책을 공유한 후에는 아츠 마에바시의 전시를 살펴보며 어떤 것은 왜 아름답기 때문에 나쁘고, 왜 오랜 시간이 지나 망실되어도 힘이 센지를 추측해보았습니다. 비어있는 남동의 개념을 채운 전쟁의 색채와 그로부터 우러난 자만심이 타국을 비하하는 데에 쓰였다는 실망감, 그럼에도 치부에 가까운 역사를 깔끔하게 보존하고 있는 미술관 아카이브에 관한 부러움이 살 속에 들러붙었습니다.

고토 겐이치의 저서 『’남진’·점령·탈식민지화를 둘러싼 역사 인식 동남아시아로부터 본 근현대 일본』(2023,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의 3장에서, 저자는 일본의 ‘선전’이 지역적, 문화적 맥락에서 복합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구상이 당시 일본 사회에 “동남아시아에는 해방을 가져다 주었다는 믿음(350-351쪽)”이 편만했음을 언급합니다. 지금의 일본 ‘고전’ 영화 및 애니메이션에 남아있는 서양인들을 이겼다는 자부심, 패전 직전에도 미술전을 열겠다는 만용, 증기 기관차와 도시 풍경으로 산업사회의 미감과 근대성을 화폭에 담았던 터너의 그림처럼 대동아전쟁의 기록화를 담아낸 방식은 내내 한국인인 우리의 성장과정과 함께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만져보지 못했던, 남동아시아라는 근래의 개념을 탄생시킨 추적과 탐험, 틀짓기 과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옛 지도에서, 이미지는 텍스트보다 더 강한 타격감을 주었습니다. 

지난 토요일의 여정과 나란하게 두고 싶은 논문은 세 번째 스터디에서 읽었던 오태영 선생님의 「동아시아 지역주의와 조선 로컬리티: 식민지 후반기 여행 텍스트를 중심으로」(박사 논문, 동국대학교, 2012)입니다. 이는 “여행 텍스트”를 매개로 일본이 설정한 “아시아-태평양 권역으로” 여행한 조선 식자들의 “공간 인식과 경계 감각을 통한 정체성 구축 과정을 고찰”(1쪽)한 과정을 검토하며, 근대 이후 ‘여행’이라는 지리학적 행위로부터 얻는 정보와 새로운 문화와의 접속이 ‘시각’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근대적인 여행과 관광 행위, “‘이동(mobility)’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식민지시기를 재해석”(2쪽)하면서 예술 장르에 드러난 조선인들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식민 조선의 관점에서 “대동아공영권 구축 과정에서 새롭게 부상한 남양 지역으로의 여행 등은 모두 1930년대 이후 제국의 지리적, 문화적 팽창의 결과 동아시아 지역 질서의 변동 과정 속에서 새롭게 위상을 부여받은 공간과 장소로의 지리적 이동이었다”(17쪽)는 사실은 오늘의 저희가 남동아시아 여행에서 느끼는 감각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요? 혼종적인 자아 분열 상태의 경험, “식민지 지식인의 주체성 형성 과정에 내재한 제국과의 공모의 구체적인 지점”(8쪽)을 포착해 갱신하겠다는 난제는 귀국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10월 5일
📍도쿄도 현대미술관 아트라이브러리 Museum of Contemporary Art Tokyo|4 Chome-1-1 Miyoshi, Koto City, Tokyo 135-0022 
📍아츠 마에바시 Arts Maebashi《Liquidscape: Southeast Asia Today》|5-1-16 Chiyodamachi, Maebashi-shi, Gunma-ken 371-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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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록(寫眞日錄)] 3.
2024년 10월 6일, 그리고 10월 7일, 비오는 후쿠오카시

옛 ‘대동아공영권’의 수도, 황도(皇都)였던 도쿄에서 벗어나게 되어 실은, 무척 후련했습니다. 좁은 길, 좁은 방에서 움츠러드는 자유를 느꼈기에, 후쿠오카로 가는 길이 다행스러웠습니다. 물론 길항이라고 할 수는 없었는데요, 왜냐하면 알아듣고 말하고 전하는 언어가 세 개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개국어의 환경에서 말은 세 배로 빠르게, 마치 꼬리가 잘린 도마뱀이 도망치듯 더듬거리며 달아났습니다. 그 동안에도 마사히로 우시로쇼지(Masahiro Ushiroshōj, 後小路雅弘) 선생님이 내어주신 커피와 한 뭉치의 책은 조용한 환영을 대신했습니다. 설은 일어와 영어와 한국어로 “‘아시아다움’에 대한 탐구(The quest for “Asianness”)”는 무엇일지, 청년기의 그가 소량의 정보만을 가지고 대면한 남동아시아 현대미술에 관한 서술을 지금까지 이어온 이유들을 들어보려 애썼습니다. 탈아 선망 이후 역설적으로 아시아로 회귀한 일본, 1980년대 버블경제를 지났음에도 1990년대에 후쿠오카에서 늘어난 남동아시아 작가들의 전시로부터 정보를 축적해 1999년 개관한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의 소식이 특집으로 실린 『미술수첩(美術手帖)』, 친구로서 보아온 나빈 라완차이쿨(Navin Rawanchaikul)의 가족사에 접하는 저녁이었습니다. 명성에 관계없이, 중고책 사이트에서 추천하는 책을 직접 찾아주시는 선배 학자로서의 상냥함에 마음이 부풀기도 했습니다. 

우시로쇼지 선생님의 글 「일본 점령하의 남동아시아 예술(ART OF SOUTHEAST ASIA UNDER JAPANESE OCCUPATION), 1942-45」(2013, Tetsugaku nenpō 72, 49- 72. / 2021,  Bunka-cho Art Platform Japan)에는 일본 군정이 남동아시아 각지의 현대 미술사에 미친 영향과 문화적 교류, 갈등의 층위가 서술되어 있습니다. 도마뱀 서점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글이 예제로서 들고 있는 국가별 주요 작품이 ‘표면’에 드러낸 ‘정형화된’ 이미지의 양상이 패전 이후의 일본에게는 ‘식민색’으로, 2024년 우리의 눈에는 어색한 그림으로 느껴지는 사유에 관해 얘기했습니다. 압제와 표현의 방향성은 다르기 마련인데, 이것이 뒤섞인 형태로 욱여넣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므로 현시점에서는 예술로서 유효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를 속박 없는 고립어로 나누어보았습니다.

월요일인 7일 오전 10시에는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8층 도서실에 앉아 신청 도서와 조순혜 선생님의 추천 도서를 꼬박 살펴보았습니다. 아지비(AJIBI)에 모인 남동아시아 미술자료는 간행물별로, 국가별로, 시대별로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수수하지만 높은 기능을 갖춘 아카이브 모빌랙 사이를 누비다가, 3시부터 4시까지 조순혜, 이소현, 나카오 토모미치(Nakao Tomomichi) 선생님과 만났습니다. 개관 이전의 전시 구성과, 미술관이 개입해 작가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전환된 기획방식, 1994년 《제4회 아시아 미술전》이 아지비 미술관 설립의 핵심적 사건이었다는 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도심에 위치한 시(市) 미술관으로서 소장품을 수집하고 이를 어떻게 시민들에게 제공할 것인가를 회차를 거듭해가며 고민하는 전시방식은 한 장소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당연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인사를 나눈 후 학예실과 참고문헌 열람실 사이의 복도에서, 잠시간 한국 미술관에 속한 소장품들이 상대적으로 홀대받고 있지는 않은지, 연구자들에게 희귀 자료도 무람없이 내어줄 수 있는 자신감이 우리의 기관에는 있는지를 성찰하기도 했습니다.

세로쓰기에 최적화된, 긴 전시 포스터와 화이트보드 앞에서 조금씩 정리한, 가로로 길기만 한 비망록이 간략하게나마 여행기로 수렴될 수 있음에 안도했습니다. 해외로 떠나는 연구자들은 박대와 환대의 경험을 동시에 하기 마련인데, AS로서의 첫 해외경험이 환영 속에서, 의욕을 유실하지 않고 새로움을 발견하는 발로였음에 감사했습니다.  

10월 6일
📍도마뱀 서점 とかげ文庫 Bibliotheca Lizard|福岡市博多区古門戸町5-5 水上ビル503号

10월 7일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 福岡アジア美術館|Hakata Ward, Shimokawabatamachi, 3−1 7・8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