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는 말 — 『시차와 시차: 남동아시아 오역하기』
조현아 · 문혜인(AS)

현대미술을 비평적 자세로 대면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는 많지만, 이 책에서는 주로 일반 언어와 조형 언어, 그리고 이 두 가지에 모두 작동하는 인식의 틀과 사고 방식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작품 개별의 특성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찾고, 각국의 미술 흐름과 궤적의 차이를 살피며, 자신이 여태껏 습득한 언어로 질문하며 대화의 계기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배워온 미술 비평의 자세였습니다.1 비평은 사회문화적 맥락을 톺아 누락된 지점을 발굴하고 의미를 확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이 비평서에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미술의 언어를 사용해 그 단계에 진입하는 오답노트처럼 기능하기를 바랍니다. 아시아 미술사 탐구 과정에도 그간 다수가 놓쳐 왔던 대륙부와 도서부 남동아시아 국가 간 문화 교류와 맥락을 좇는 연구자들의 무람 없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타국의 시선에서 사회문화적, 특정하게는 미술의 맥락을 쫓는 일은 역사가 된 학문으로부터가 아니라, 각국이 이미 가지고 있으며, 진행중인 그들의 ‘이야기’로부터 배워갈 발판이 되어줍니다. 파편적일지라도 국가별로 내재한 문화적 역량과 첨예한 시대 인식을 발견하고 흡수하고 발원된 모더니티가 어떻게 그 내부의 이야기와 달라붙었는지를 떼어보는 일은 작게나마 미술사의 범위 확장을 가능케 할 것입니다.

사실, 전술한 사유 때문에 남동아시아 미술 진입 과정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남동아시아 미술이 열강의 역사를 반영하는 동시에 표현 양식의 총체로서 존재하는 까닭입니다. 특히 시각문화 안에 상륙한 모더니즘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아시아 모더니즘’이나 미술사조의 이행 과정에 관한 정보값이 적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더불어 통사적인 남동아시아 미술사 쓰기의 표본은 학술 서적보다 주로 전시나 도록의 형태였고, 개별 연구자들이 진전시킨 주제별 논고들은 앤솔로지로 출판되었거나 세미나 자료로서 흩어져 발간되어왔기에 한 곳에 집적된 경우가 희소했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한계 속에서 써 온 우리의 글도 제언의 역할만을 수행할 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남동아시아 미술에 대한 비평적 태도로 진행되는 연구의 필요성에 공감을 촉구하며, 본문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독자분들께 사전 동의를 구하고자 합니다. ‘일치(agreement)’는 언어학의 개념을 빌리자면 일종의 ‘굴절’인데, 이는 어떤 단어가 문장 속에 쓰임과 관계로 인해 그 형태가 변하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우리가 남동아시아 미술을 연구할 때 취한 접근방식에도 개별 시점에서의 굴절이 있었음을 인식하고, 우리가 앞으로도 제안하고 사용할 용어에 대한 양해를 요청드립니다.

먼저, 동남아시아를 ‘남동아시아’로 환치하고자 합니다. 용어의 변환은 각 지역에서 발생한 미술과 문화의 특수성을 논의하고, 미술과 2차대전 전후의 국제 · 사회적 현상이 어떻게 타국의 미술을 오역하고 위치지었는지를 탐구할 때 유용한 개념적 도구가 됩니다. 미술이 인공적인 생산물인 만큼, 말을 수단 삼아 미술에 접근해 가는 일은 ‘낯설게 하기’를 통해 시점의 변화를 동반하고 새로움을 촉발하는 과정이 됩니다. 지리적으로 ‘동남아시아’와 ‘남동아시아’는 같은 지역을 지칭하나, 다른 기준을 지닌 얼굴로 다가옵니다. 이는 우리가 ‘남동아시아’의 범용을 기대한다기보다 동시대 미술이 조망해 온 언어와 미술의 친연성에 기대어, 적어도 미술계 안에서 이를 바라보는 합치점을 제시하려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사유는 ‘동남아’에 덧씌워진 내부 오리엔탈리즘의 극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서구의 시각으로 동양을 이해하려는 편견이나 왜곡된 해석을 인지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앎을 성찰함으로서 오리엔탈리즘의 극복에 다다르려는 목표는 ‘이제껏 재생산되어온 시각문화적 문맥이 이웃 나라를 어떻게 상상하고 정의해왔는가’라는 질문도 발생시킵니다. 과거의 열강이 ‘자연’ · ‘순수함’ 등의 이미지로 남동아시아를 묘사한 과실을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유사하게 투사해 오지는 않았는지요. 대도시 주민이 시골을 언제든지 머물다 올 수 있는 휴양의 공간처럼 대하고, 같은 시점에서 생산해온 남동아시아의 사진 · 영상 · 이미지는 서양 제국주의자들이 동양을 인식한 관점과 같은, 타성에 젖은 바라보기 방식에 다름 아닙니다. ‘내부 오리엔탈리즘’의 작동 방식은 한국이 동남아시아의 문화, 도시 풍광, 미술 생산의 조건을 납작하게 만드는 과정에서도 되풀이됩니다. 걸출한 남동아시아의 작품을 보고 ‘의외’라던가, ‘제법’이라는 단상을 갖는 연고는 동남아시아를 일본에서, 그리고 일본의 시각을 흡수한 한국에서 마주하는 관점에 준한 것이기도 합니다.

용어를 변경하면 시좌(視座)를 바꾸는 과정이 생깁니다. ‘시좌’는 사전적 의미로 ‘사물을 보는 자세’를 뜻하는데, 기존의 관점을 인지하면서도 그 안에서 다른 해석을 발생시키는 자리를 찾아가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서양미술과 일본의 시각문화, 군부 독재, 내전이라는 현대사 안에서 생산된 작품에 객관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제삼자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시좌의 변위는 자연스럽게도 시차(視差)와 시차(時差)를 생산합니다. 남동아시아 미술을 보는 시간과 세대의 차이, 또한 기준점과 방향의 차이는 그 미술이 서술되어 온 위치의 변화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다층적인 역사적 전환과 사회적 변화, 민족과 이념의 교착과 배제 속에서 나타난 복합적인 문화적 구성물인 남동아시아 미술을 읽어가며 서술해낸 기록은 사실에 기반해 있으면서도, 곡해된 해석을 얼마든지 포함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의 적록(摘錄)은 남동아시아 미술을 이루는 시각적 요소를 넘어 이것이 어떻게 한국에 소개되었고 재구성되었는지를 역순으로 살펴가는 실마리가 됩니다. 동시에 이는 앞서 적재된 연구로서, 후대 연구자인 우리의 오역 대상이 됩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레퍼런스가 풍부한 지역일수록 번역된 자료가 많고, 이에 따라 빈번한 오역이 발생합니다. 이는 그곳을 둘러싼 관심의 척도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또한, 바라건대, 시각적 변위와 지식의 재생산 사이에서 발생하는 오역은 제삼자의 시점에서 바라본 특성으로 갈음되기도 합니다. 남동아시아 미술을 읽는 시차·변위·적록에 기인한 요소들은 그러므로 서로 호환 가능하며, 그 해석에 각각 개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초국가적 미술의 연결을 지속하려는 의제가 만발한 시대에, 동남아시아 11개국의 미술 전부를 다루지 못한 까닭도 고백하고자 합니다. 기실 이는 시각문화 안에서도 작동하는 국가적이고도 자본주의적인 힘의 균형에 복속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얻을 수 있었고, 주목할 수 있었던 자료 및 작품 이미지는 주로 인도네시아 · 태국 · 말레이시아 · 싱가포르 · 필리핀 · 베트남 같이 정부 주도로 국가적 미술관 컬렉션을 구축하고 자료를 아카이빙해두었던 국가로부터 왔습니다. 다시 말해, 자국과 타국의 예산과 제도로 장기 해외 유학을 했던 연구자 집단을 배출한 이력이 있는, 2차대전 이후 주도적으로 전후 복구사업을 조속히 전개한 국가의 작가들이 여기에서도 부각됩니다. 한국 연구자로서 우리가 일본이라는, 상당한 정보를 보유한 근대적 미술 자료와 연표, 지도에 의지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렇기에 연구자들이 실증적으로 제시해 온 정보값이 부족한 라오스 · 캄보디아 · 미얀마 · 브루나이 · 동티모르 미술을 알아가는 작업은 후속 과제로 남았습니다. 물론 해당 국가 출신의 동시대 미술가들이 국제적 비엔날레와 기획전에서 작품을 발표해왔지만, 군부독재로 인한 검열과 데이터의 질적 문제로 1900년 전후 기록에 접근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사각지대는 우리의 빈틈과 균형 맞추기의 어려움으로, 여전히 존재합니다.

한국에게 남동아시아는 시각문화 연구 대상이라기보다는 줄곧 외교를 위한 지정학적이고 경제적인 탐구 대상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국내 미술계에서 남동아시아 미술에 대한 소개의 빈도가 잦아졌음을 부쩍 느낍니다. 단편적일지라도 상업 갤러리에서 태국 · 싱가포르 · 인도네시아 · 필리핀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거나 사립미술관에서 같은 국가 출신 연구자의 강연 또는 렉처 퍼포먼스 진행 소식도 부쩍 늘었습니다. 이는 이제껏 희귀했던 소재와 주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새로운 현상에 흥미를 보이는 미술의 습성이 드러내는 반향이라고도 짐작됩니다. 미술의 태생적 기질에 따라 남동아시아 미술의 독창성과 그 역사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현상을 연구 과정에서 마주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이 책은 희미하게나마 남동아시아 미술의 의미를 우리의 관점에서 소화해낸 기초적인 정보의 묶음에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또 다른 과업, 즉 앞으로는 ‘언어적 장벽과 자료의 빈약함을 치밀하게 메꾸는 실천에 천착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문제 앞으로 나아가기 전, 용어와 주제에 관한 안내 말씀을 드려봅니다. 독자분들의 이해로부터 이 책은 시작됩니다.

  1. 최민, 「최소한의 윤리-비평가의 자세에 대하여」,『시각과 언어2』, 1985, 열화당, pp.86-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