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t In Japan: Summoning the “大東亞共榮圈(GEACPS)” to the present
2025년 11월 5일, 그리고 11월 6일, 겨울을 맞이한 자카르타
Jo Hyunah
Ⅰ.
30분 간격으로 폭우가 오고, 기도 소리와 노래가 들리고, 좁은 길 건너 다른 종교집단이 모여 있는 곳. 교통 체증이 만들어낸 매연과 모기향 냄새, 오토바이 소리를 한 자리에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곳, 자카르타. 2019년 펩시 철수 이후부터 탄산음료 없이 운영되었을 음식점 한켠에서 저녁시간을 보내며 쓴 메모를 이어본다.
첫째 날에는 무슬림이 아니라는 타당한 이유로 기도 시간이 다가온 모스크에 들어가지 못해, 길 건너 대성당에서 이번 리서치 트립의 안녕을 빌었다. 둘째 날에는 부족한 시간 탓에 인도네시아 내셔널 갤러리의 상설전을 뛰어가며 훑었다. 식민 시기부터 현재까지의 미술사는 분명 존재하지만, 각 작품의 해제를 살펴볼 매체의 부재가 독해의 욕구를 감소시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수조요노(S. Sudjojono)와 A.D. 피루스(A.D. Pirous)의 작품이 소장된 국립 미술관에서도, 그들이 발행한 영구 소장품이나 상설전 도록뿐만 아니라 웹사이트도 없다는 점은 거버넌스의 부재를 암시했다. 각자의 근대를 함께 회고하고 같은 ‘동시대 미술’의 지대에 서는 방법을 상상할 때, 남한의 연구자로서 이를 현실로 구현할 방안은 무엇일까? 공동의 출판과 연구만이 도약의 비계를 더욱 촘촘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둘째 날에는 뮤지엄 마짠(Museum MACAN) 디렉터 비너스 라우(Venus Lau) 및 학예팀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상적이었던 언급은, 인도네시아 미술관에는 혼자 오는 관람객이 거의 없기에 미술관이 모임 장소이기도 하다는 점을 미술관측에서 또렷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현재 인도네시아 미술관들은 젊은 세대가 머물고 배울 문화적 환경이 희소한 만큼 주로 팬데믹 이후의 관람객인 Z세대의 문화적 환경이 되고자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 관람객 집단과 함께 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 룸과 워크숍이 필수적이라는 점도 남동아시아에서 미술 공간을 꾸릴 때 고려해야 할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인도네시아는 혁명이나, 학살사건의 경험이 있기에 탈식민주의나 트라우마, 최근의 팬데믹에 관한 반응은 다른 남동아시아 국가들과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애도의 형식이나 방법은 상이하다고 본다고 들었다. 마짠은 다양한 작가들의 개인전을 지원하지만, 특히 나타샤 톤테이(Nathasha Tontay)는 인도네시아의 1950-1960년대 필름과 초현실주의, 술라웨시 벽화로 대표되는 지리적, 고대적 역사를 말하고 있다. 이때 나는 현재 젊은 여성 작가의 영상이 1960년대 다시 쓰기로부터 남동아시아 미술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더불어 아카이브 팀에서는 식민지 풍경화 양식이었던 무이 인디(mooi indi)부터 헨드라 구나완(Hendra Gunawan)의 작품들을 친절하게 보여주었다. 식민 시기의 관점을 대표하는 인도네시아 풍경화부터 환경문제에 관한 토론까지가 미술관이 다루어야 할 화두이고, 이 같은 문제의식이 전시와 아카이브 연구 주제 설정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다음에 인사를 나눈 곳은 자카르타예술위원회(Jakarta Art Council)였다. 1968년 출범해 지금까지 이어져온 자카르타예술위원회도 정부 지원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의 거의 유일한 국제교류시스템은 자카르타 비엔날레(Jakarta Biennale)이고, 1974년부터 회화를 주로 취급했지만 지금은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시각예술 위원회가 선보인 계획 중, 2026년에는 ‘미술 글쓰기(Art Writing)’에 주력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미술 비평(Art criticism), 큐레토리얼 글쓰기(Curatorial Writing), 취재와 보도를 겸하는 미술 저널리즘(Art Jourlism)을 20대와 30대 학생 대상으로 강의할 예정이었다. 자카르타예술위원회와의 만남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분야별 위원회가 선보일 수 있는 프로그램 큐레이션의 자유도가 충분하고, SNS와 유튜브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무용 및 퍼포먼스 위원회에서도 ‘무용 글쓰기(Dance Writing)’에 주력할 예정인데, 장르 특성상 안무가와 댄서, 협업자들 사이에 크레딧을 나누는 방법을 숙고하고 있었다. 이들이 꼽은 예술가는 이슈바라 데바티(Ishvara Devati, 무용, 드랙으로 가부장제와 퀴어 이슈를 다뤄옴), 시코 세티안토(Siko Setyanto, 사회 하위 계층의 몸, 무용가 아닌 사람들과 무용을 만들기) 등이었다. 무용 및 퍼포먼스 위원회에서도 글쓰기와 축제로서 언표하려 하는 것은 미술 분과와 마찬가지로 ‘동시대 아시아 미학’을 정의하고 발굴하는 것이었다.
Ⅱ.
6일 오후 일정을 마무리하고 톺은 생각은, 동시대 아시아 미학(Asian Contemporary Aesthetics)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자카르타가 물에 잠긴다는 지리적이고 환경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특히 자카르타 예술계가 개발하고 탐구할 주요한 문제 중에 ‘아시아 미학’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자카르타의 예술적 조건이 죽음이나 애도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 그럼에도 지리적 요건에서 비롯한 낙천적 분위기가 그 표면을 덮고 있어 비애의 미감이 희석되는 경우가 자주 보였기에 주제와 감상의 낙차가 크다는 특성은 그 ‘미학적 특색’의 정의를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분명하다고 느낀 것은, 이들이 유럽의 담론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자 한다는 점이었다. 전쟁과 개발로 황폐해졌기에 지리적인 축소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 “자카르타와 발리가 가라앉고 있는 시점에서 유럽의 담론을 예술계가 계속 반복하”는 것에서는 의미를 찾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자카르타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이동한 저녁이었다. 교통 체증을 뚫고 진행된 세 번째 미팅은 루앙루파와 굿스쿨에서 이루어졌다. 이들 콜렉티브는 예술생태계를 위해 하나의 큰 공간을 얻고, 연극·댄스·음악 페스티벌·비디오 및 미디어·퍼포먼스 등 넓은 창작 지대를 마련하자는 의도였다. 콜렉티브 프로그램을 진행할 공간이 상영이나 식사를 위한 자리로도, 아카이브를 위한 장소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었다. 만약 이런 모델을 서울로 옮겨온다면, ‘어떤 건물이 이같이 유연한 프로젝트를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공간을 내어줄 수나 있을 것인가’가 질문이 된다. 이들은 자신을 수하르토 정권의 신질서에 이은 “신-신질서(New New Order)”이후의 유포리아(euphoria)라고 언급했다. 이들은 ‘공식적인 미술관’ 노선에도, 마르크스주의적 기조에도 속하지 않은 타링 파디(Taring Padi)의 다음 세대다.
루앙 루파와 ROH 갤러리 일원들로부터 얻은 간략한 미술 사건의 얼개:
수하르토의 신질서(Orde Baru, New Order, 1966-1998)|추상으로 대표되는 ‘미술관’ 노선 vs. 레크라(Lek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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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신질서(레포르마시, Reformasi, Post-New Order, 1998-현재)|차마티(Cemeti, 1988-현재)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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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타링 파디(Taring Padi), S.K.A.N.A. 활동 시작, 쿤치(KUNCI, 1999)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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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 56(MES 56, 1999-현재), IVVA(1999-현재), 루앙 루파(ruangrupa, 2000-현재)
두 가지 노선에서 벗어나는 저항 및 표현체계의 필요성을 깨달으며, 루앙루파와 굿스쿨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Spend time together)”를 콜렉티브 일원이 되는 방법으로 제시했다. 가족과 이웃을 중심으로 콜렉티브 실천을 지속하는 이유는 국가적 검열 없는 공공교육의 필요와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들의 뜻에 저항하거나 반대하면서 커가는 아랫세대가 있다는 것이 희망적이란 말을 더했다. 이들의 차후 계획은 서쪽으로의 연결을 만들어가는 것인데, 국가를 뛰어넘는 공동체적 연결을 상상하고 있다.
Ⅲ.
다시 아침. 갑작스럽게 열이 났지만, 곧 회복했다. 오후에 족자카르타로 이동하기 전 마지막 일정은 자카르타에 위치한 ROH 갤러리와의 미팅이었다. ROH의 사업 범위는 기관 협력에서부터 국제교류, 비공식적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아우른다. 이는 상업갤러리를 넘어선 확장을 도모하는 것이고, 동‧남 아시아를 넘어 젊은 소속 작가를 선보이는 장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의미로 지속된다. 이들의 상업 및 비상업 프로젝트는 인도네시아, 남동아시아,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순으로 진척되고 있다. ROH는 약 10년 전 인도네시아 아트신에 관한 높아진 관심도에 부응하면서 지속적인 트렌드를 건설하고, 생태계 자원을 공유하거나, 기여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고 있다. 자카르타를 활동 지역으로 정한 이유도 틱톡과 SNS를 통한 콘텐츠 확산이 빠르고, 이로써 국제적이고 세계적인 연결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ROH가 소개하고자 한 소속 작가로는 아딧 노벨리(Aditya Novali, 인도네시아), 마리아 타니구치(Maria Taniguchi, 필리핀), 케니타 티트(Kanitha Tith, 캄보디아), 트로마라마(Tromarama) 등이 있다.
자카르타에서 머물며 바라보고, 글로 옮긴 이 시기는 또한 주요한 예술 조직들이 정부를 신뢰하기보다, 지역 유지나 사립 기관, 또 다른 풀뿌리 예술 단체에 기대왔기 때문에 예술 제도의 거버넌스가 수평적이라는 특색으로 기억될 것이다. 문제는 그 특색이 유럽과 미국에서는 거의 사라졌기에, 그리고 서구적 제도를 수입한 동아시아 국가의 예술정책이 ‘수평성 찾기’에 주목하며 이제 다시 되기를 바라는 모델로 조금씩 선망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정부와 시민공동체의 단절, 극심한 빈부격차로부터 생겨난 외연의 일부다. 이 점을 남한, 더 나아가 다른 국가의 예술 제도가 어떻게 섭취할 것인지가 지금부터의 과제가 될 것이다. 2025년 K-컬처가 남동아시아의 호감을 끌고 이 고립어가 그들로부터 다시 발화되고 쓰이는 시점이 된 지금 우리가 해두어야 할 것은 ‘남동’의 예술 지형에 일본이나 싱가포르와 다른 방식으로 파고드는 일이다. ‘친구 만들기’, 룸붕에 기여하기. 그 형태로 동료가 되는 일을 생각한다.
